나는 석사와 박사를 다른 교수님 밑에서 했다. 두 분 다 기억에 남는데, 이유가 전혀 다르다. 한 분은 기대와 실망으로 기억되고, 다른 한 분은 버텨냈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학원 10년을 돌아보면, 지도교수님이 연구만큼이나 대학원 생활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걸 절감한다.

석사 — 체험에서 실망까지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한 건 학부 때 연구실 체험 수업 덕분이었다. 대학원생들의 연구를 옆에서 도우며 처음으로 느꼈다. 수업에서 배우는 건 이미 알려진 답이 있는 것들이었는데, 연구는 달랐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그 점이 흥미로웠다. 정해진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게 설레었다.
그 수업을 담당하던 교수님께 직접 찾아가 석사 지원을 했다. 학부 때는 관심도 많이 주시고 자상하게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그래서 믿고 갔다.
막상 입학하고 나니 달랐다. 방임에 가까웠다.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방향도 없이 혼자 논문을 읽고, 혼자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가 나와도 피드백이 없었다. 선배들에게 조언도 구하고, 스스로 버텨보려 했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학부 때의 그 자상함이 입시 전략이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분이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박사 — 몸이 먼저 한계를 알렸다
박사는 다른 교수님 밑으로 갔다. 처음부터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지독했다.
자기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행동하면 몇 시간을 붙잡고 혼냈다. 왜 그렇게 했냐, 왜 이렇게 하지 않았냐. 논리적인 지적이 아니라 감정적인 질타였다. 주말에도 필요하면 출근 지시가 내려왔다. 새벽에 전화를 받을 때까지 계속 걸었다. 한 번은 새벽 두 시에 전화를 받았다. 연구실은 늘 긴장감이 감돌았고, 교수님 이름이 뜨는 카카오톡 알림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중간에 스트레스로 입원했다. 대상포진도 걸렸다. 면역이 떨어지면 걸린다는 그 병이, 30대 초반에 찾아왔다. 몸이 먼저 한계를 알린 것이었다. 자료를 모아서 신고를 할까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정리도 해뒀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그럼에도 나가지 않은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걸 중간에 그만두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박사 중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전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과장된 공포였지만, 그 안에 있을 때는 그게 전부였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연구실 사람들이었다. 다들 같은 처지였다. 교수님한테 치이고 나서 서로 이야기 나누고, 위로하고, 같이 밥 먹고, 또 다음날을 버텼다. 그 유대가 없었다면 졸업까지 가지 못했을 것이다. 힘든 연구실일수록 구성원끼리 끈끈해지는 역설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그 시간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본다. 강해졌냐고 물으면, 모르겠다. 다만 어떤 환경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어느 수준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인지도 알게 됐다. 그게 자산이 됐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대학원을 준비하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것이다.
지도교수님을 고를 때 연구 실적만 보지 말라. 논문 수, 연구비 규모, 저명도 — 다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지금 그 연구실에 있는 대학원생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보라.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웃을 수 있는지, 교수님 이야기를 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그게 더 솔직한 답이다.
연구실은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이 이후 몇 년을 결정한다.
대학원 진학 전에 꼭 확인해야 할 것
지금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한 가지 강하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도교수님을 고르는 일이 연구실을 고르는 일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구 실적이 좋다고 해서 좋은 지도교수님은 아니다. 논문 수, SCI 저널 게재 횟수, 연구비 규모 — 이런 것들은 교수님이 연구자로서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줄 수는 있어도, 대학원생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지도교수님의 인격과 연구실 문화는, 학위 기간 내내 연구 이상으로 영향을 미친다. 나는 그걸 몸으로 배웠다.
입학 전에 꼭 해봤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그 연구실 대학원생들을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밥은 잘 먹는지, 주말에 쉬는지, 교수님 이야기를 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지원 전에 커피 한 잔을 핑계로 만나달라고 하면 대부분 응해준다. 그 짧은 대화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박사 때 그 확인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주변에서 강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연구실 분위기를 체험해보지 않고 들어갔다. 그 선택의 대가가 입원이었고 대상포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느낀다.
버텨냈다는 것의 의미
박사 학위를 받은 날, 뭔가 큰 감동이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는 그냥 피곤했다. 기쁨보다는 안도가 컸고, 안도보다는 허탈함이 더 컸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끝나고 나서 느끼는 감정이 그것뿐이었다는 게 좀 묘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그 시간들이 나를 어떻게든 만들었다는 것이다. 강해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떤 환경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동료들과 만든 연대가, 연구보다 오래 남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연구실은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이 이후 몇 년을 결정한다. 충분히 확인하고 들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만약 이미 힘든 연구실에 있다면 —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같은 처지의 동료가 반드시 있다.
이 글은 화학공학 박사 Peter Kim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