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첫날, 선배가 건네준 한마디
박사과정을 시작하던 첫 주, 연구실 선배가 내 자리에 슬쩍 USB 하나를 꽂아주며 말했다. “야, 이거 EndNote야. 나중에 논문 쓸 때 꼭 필요하니까 설치해둬.” 그게 전부였다. 사용법도, 왜 필요한지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선배는 이미 자기 실험으로 바빴고, 나는 그냥 “아, 네” 하고 USB를 받아들었다. 그렇게 나의 EndNote와의 첫 만남은 너무나 허무하게 시작됐다.
설치는 했는데 막막했다. 프로그램을 열어보니 인터페이스가 낯설었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논문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었고, ‘레퍼런스 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그냥 Word 문서에 참고문헌을 직접 손으로 타이핑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다.
결국 독학이었다. YouTube 영상을 찾아보고, EndNote 공식 튜토리얼 PDF를 읽고, 직접 논문을 하나씩 넣어보면서 기능을 익혔다.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누군가 처음부터 친절하게 알려줬다면 그냥 흘려들었을 것들을 직접 부딪히며 체득했다. 돌이켜보면 그 선배의 무심한 한마디가 내게는 꽤 좋은 출발점이 됐던 것 같다.
EndNote — 논문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도구의 진가
EndNote의 진짜 가치를 깨달은 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논문 초고를 쓰기 시작했을 때였다. 화학공학 분야 논문은 참고문헌이 기본 30개에서 많게는 100개 이상 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걸 일일이 손으로 관리한다고 생각해보라. 저자 이름, 저널명, 권호, 페이지, 연도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타이핑하다 보면 오탈자가 생기고, 순서가 바뀌고, 형식이 제각각이 된다. 나는 초기에 실제로 그런 실수를 몇 번 겪었다.
EndNote를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Web of Science나 ACS Publications 같은 데이터베이스에서 논문을 검색하면 바로 EndNote 라이브러리로 불러올 수 있다. 그리고 Word 문서에서 Cite While You Write 기능을 사용하면, 본문에 인용 표시를 넣는 순간 참고문헌 목록이 자동으로 생성된다. 저널마다 요구하는 참고문헌 형식이 다른데, 스타일만 바꿔주면 ACS 형식이든 ACS Nano 형식이든 순식간에 바뀐다. 이게 얼마나 편한 건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특히 논문 리비전 과정에서 EndNote의 진가가 빛났다. 리뷰어가 새로운 참고문헌을 추가하라고 요구하거나, 본문 순서를 바꾸면 참고문헌 번호가 전부 틀어진다. 수동으로 관리했다면 전체를 다시 점검해야 하는 지옥 같은 작업이지만, EndNote는 그냥 자동으로 업데이트해준다. 논문 한 편을 완성하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데, 그 긴 과정에서 레퍼런스 오류 하나 때문에 리젝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EndNote는 그런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막아주는 안전망이었다.
라이브러리 관리 기능도 유용하다. 나는 연구 주제별로 그룹을 나눠서 논문을 분류해뒀다. 예를 들어 ‘촉매 반응’, ‘나노소재 합성’, ‘공정 최적화’ 같은 식으로 폴더를 만들어두면, 나중에 비슷한 주제의 논문을 쓸 때 이미 읽어둔 문헌들을 빠르게 찾을 수 있다. 박사과정 5년 동안 쌓인 라이브러리는 나만의 지식 데이터베이스가 됐고, 그 자체로 엄청난 자산이 됐다.
Origin — 엑셀로는 절대 못 만드는 그래프의 세계
Origin을 처음 접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실험 데이터를 엑셀로 정리하고 그래프를 만들어서 지도교수님께 보여드렸더니, 한마디가 돌아왔다. “이거 논문에 그대로 쓸 수 있겠어?” 그 말의 뉘앙스는 분명히 ‘아니오’였다. 엑셀 그래프는 기본적으로 프레젠테이션용이지, 학술 논문에 들어가는 출판 품질의 그래프를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폰트, 선 굵기, 축 레이블, 범례 위치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제어하기가 어렵고, 결과물도 어딘가 투박하다.
Origin은 달랐다. 처음에는 인터페이스가 낯설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그래프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오히려 줄었다. 축의 범위, 눈금 간격, 선의 색상과 스타일, 오차 막대의 형태, 범례의 글꼴 크기까지 모든 요소를 픽셀 단위로 조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설정해둔 템플릿을 저장해두면, 다음 그래프를 만들 때 같은 스타일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서 논문 내 그래프들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화학공학 실험에서 자주 쓰는 그래프 유형들, 예를 들어 반응 속도 곡선, XRD 패턴, BET 등온선, TGA 곡선 같은 것들을 Origin에서 그리면 정말 깔끔하게 나온다. 특히 여러 샘플을 하나의 그래프에 겹쳐서 비교할 때 색상 구분이 명확하고 선의 질이 좋아서, 흑백으로 인쇄해도 구분이 잘 된다. 저널마다 그래프 해상도 요구사항이 다른데, Origin에서는 300 dpi, 600 dpi 등 원하는 해상도로 이미지를 내보낼 수 있어서 투고 준비가 훨씬 수월하다.
또한 Origin은 단순한 그래프 툴을 넘어서 데이터 분석 기능도 갖추고 있다. 피크 피팅, 비선형 곡선 피팅, 통계 분석 등을 내장 기능으로 처리할 수 있다. 나는 촉매 활성화 에너지를 구하기 위한 Arrhenius 플롯을 Origin에서 그리고, 선형 피팅까지 바로 적용해서 기울기와 절편을 뽑아냈다. 엑셀에서도 비슷한 작업이 가능하긴 하지만, Origin이 훨씬 직관적이고 결과의 신뢰도도 높다고 느꼈다.
두 도구가 내 연구 생활을 바꾼 방식
EndNote와 Origin, 이 두 가지 도구는 내 박사과정 연구 생활의 질을 확실히 높여줬다. 연구의 핵심은 실험이고 사고이지만, 그 결과를 논문으로 정리하고 세상에 내보내는 과정에서 이런 도구들이 없었다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을 것이다. 연구자는 연구에 집중해야 하는데, 참고문헌 번호 맞추는 데 밤을 새우거나 그래프 하나 다듬는 데 반나절을 쓰는 건
아깝다. 그 시간을 절약해주는 것이 바로 좋은 도구의 역할이다.
대학원 초반에 이 두 가지를 익혀두는 것,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 중 하나다. 입학하고 나서 바로 셋업하길 권한다.
이 글은 화학공학 박사 Peter Kim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