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동안 가장 아찔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이 장면을 떠올립니다. 몇 달간 실험 데이터를 쌓고, 경향성을 찾아내고, 논문 초안까지 완성해서 드디어 저널에 제출하려던 바로 그 순간 — 비슷한 아이디어의 선행 논문을 발견했을 때입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이미 누군가가 해버렸나?” 하는 생각에 며칠을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포닥으로서 후배들에게 “그 상황을 어떻게 넘겼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오늘은 제가 직접 겪으며 터득한 전략을 솔직하게 공유해보려 합니다.

왜 이 상황이 생기는가
사실 이 상황 자체는 연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습니다. 특히 핫한 분야일수록 전 세계 여러 그룹이 비슷한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실험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도 같은 가설을 실험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 연구 방향이 그만큼 의미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내 논문이 의미 없어진 건가?”라는 불안감이 앞선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패닉에 빠지기보다, 냉정하게 그 논문을 분석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입니다.
Step 1. 그 논문을 먼저 철저히 분석한다
비슷한 논문을 발견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그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 것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막상 뜯어보면 실험 조건, 시스템 범위, 해석 방식이 내 연구와 충분히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습니다:
- 그 논문과 내 연구의 실험 set이 동일한가, 아니면 범위가 다른가?
- 동일한 현상을 다루더라도, 설명하는 메커니즘이나 해석이 다른가?
- 그 논문에서 다루지 않은 변수나 조건이 내 연구에는 있는가?
- 적용 가능한 시스템 혹은 소재가 다른가?
이 분석을 하면 자연스럽게 세 가지 방향 중 하나로 갈립니다.
Step 2. “인용 + 실험 확장” 전략으로 전환
분석 결과, 완전히 같지는 않고 내 연구가 그것보다 더 넓은 범위를 다루거나,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면 — 그 논문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내 실험 set을 더 확장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입니다.
저는 실제로 이 전략을 썼습니다. 선행 논문에서 다루지 않은 조건 범위를 내 연구에 추가하고, 논문 서론에서 그 연구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런 조건을 포괄적으로 다룬다”는 방향으로 포지셔닝을 바꿨습니다.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선행 연구 위에 제 연구를 쌓는 구조로 재편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리뷰어 입장에서도 “이 그룹은 선행 연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고, 그 위에서 무언가를 더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오히려 선행 연구의 존재가 내 논문의 신뢰도를 높이는 근거가 됩니다.

Step 3. 차별화 포인트가 무엇인지 반드시 명확히 잡는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그 논문과 나는 무엇이 다른가”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실험을 더 많이 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더 많이”가 아니라 “다르게” 혹은 “더 심층적으로”를 보여줘야 합니다. 저는 이 차별화 문장을 논문 Abstract와 Introduction에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다시 썼습니다.
만약 이 차별화 포인트를 찾지 못하겠다면, 추가 실험을 통해 만들어야 합니다. 그 논문이 다루지 않은 극단적 조건이나, 다른 소재 군, 다른 측정 방법 등을 탐색하면서 내 연구만이 가진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해야 합니다.
Step 4. 차별화가 불가능하다면 — 빠르게 방향을 바꾼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모든 경우에서 차별화가 가능한 건 아닙니다. 분석을 거듭해봐도 그 논문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주장을 하게 된다면, 그 상태로 제출해봤자 리뷰어들은 “novelty가 없다”고 reject합니다. 이 때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빠르게 다른 논문 전략을 재구성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저도 한 번은 이 선택을 했습니다. 몇 달의 작업을 접는 게 아깝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 논문이 출판된 상황에서 제가 같은 결론을 내는 논문을 내면 받아줄 저널이 없었습니다. 대신 저는 그 실험 데이터를 완전히 다른 각도의 질문에 재활용했고, 결국 더 나은 논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리: 비슷한 선행 연구를 만났을 때의 판단 기준
- ✅ 범위가 다르거나 조건이 다르다 → 인용 추가 + 실험 확장으로 포지셔닝 강화
- ✅ 메커니즘/해석이 다르다 → 차별화 포인트 명확히 하고 제출 진행
- ⚠️ 비슷하지만 추가 실험으로 새로운 영역 확보 가능 → 추가 실험 후 제출
- ❌ 사실상 동일한 주장 → 빠르게 다른 전략으로 선회
중요한 건, 이 상황을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비슷한 연구가 있다는 건 그 분야가 살아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기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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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경험: 이 글은 대학원 생활 중 직접 경험하면서 얻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