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학부 시절 C언어와 파이썬 수업을 거의 잠을 자면서 들었다. 수업이 따분했고, 화학공학과에서 왜 굳이 코딩을 배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나는 실험하는 사람이 될 건데, 코딩은 컴퓨터공학과에서나 하는 거 아냐?” —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과제는 인터넷에서 찾아 그럭저럭 제출했고, 시험도 벼락치기로 겨우 통과했다. 학점은 나왔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판단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나는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대학원 첫 해, 코드 한 줄이 무너뜨린 자신감
대학원에 들어가니 지도교수님이 첫 미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 실험 데이터는 Python으로 분석하고, 모델링도 직접 돌려야 해. 필요한 라이브러리는 네가 찾아서 써.” 나는 그 순간 속으로 얼어붙었다.
옆 동기들은 이미 numpy, pandas, matplotlib을 자유롭게 다루고 있었다. 심지어 기계학습 논문을 읽고 직접 구현까지 해보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변수 선언하는 방법도 가물가물했다.

처음 몇 달은 정말 힘들었다. 남들이 코드 한 줄로 처리하는 걸 나는 사흘 밤을 새워 해결했다. StackOverflow를 뒤지고, 에러 메시지를 복사해 구글에 붙여넣고, 그래도 안 되면 또 밤을 새우는 패턴이 반복됐다. 연구 내용 자체보다 코딩에서 시간을 훨씬 많이 잡아먹었다.
그 시간들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다. 연구의 속도와 깊이를 직접적으로 갉아먹는 손실이었다. 빨리 분석했다면 한 달 안에 끝낼 수 있었던 실험이, 코딩 때문에 석 달을 끌었다. 그리고 그 석 달은 논문 제출 일정, 학위 기간, 심지어 지도교수님의 신뢰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대가 바뀌었다 — 이공계에서 코딩은 선택이 아니다
내가 학부를 다니던 시절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10년 전에는 화학공학자가 코딩을 못해도 실험을 잘하고 엑셀로 데이터를 정리할 줄 알면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공정 최적화에 강화학습이 쓰인다. 분자 시뮬레이션에 머신러닝 포텐셜이 적용된다. 반응 메커니즘 해석에 딥러닝 기반 자동화 도구가 등장했다. 심지어 고분자 설계, 촉매 스크리닝, 소재 특성 예측까지 — 이제 계산 없이 실험만 하는 연구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공계 연구자에게 프로그래밍 언어는 이제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없으면 도태되는 것”이 됐다.
포닥으로 일하는 지금도 이 현실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우수한 해외 그룹에서 온 연구자들은 Python, MATLAB, Julia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거기에 GitHub까지 깔끔하게 관리한다. 공동연구 제안이 들어올 때도 “코드 공유 가능하세요?”라는 질문이 당연하게 따라온다. 코딩 역량은 이제 국제적인 연구 협력에서도 기본 자격 요건이 됐다.
당시 제대로 배웠다면 달라졌을 것들
가끔 학부 때 C언어 수업을 졸지 않고 제대로 들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사실 그 수업에서 배운 개념들 — 변수, 조건문, 반복문, 함수 — 은 어떤 언어를 쓰든 공통으로 쓰이는 기초다. 그걸 제대로 이해했다면, Python을 배울 때 훨씬 빠르게 익혔을 것이다.
파이썬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리스트, 딕셔너리, 클래스, 파일 입출력 — 이 개념들은 데이터 분석이든 시뮬레이션이든 어디서나 나온다. 당시에는 “이게 언제 쓸모가 있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매일 쓴다.

제대로 배웠다면 아꼈을 시간이 수백 시간은 된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에 논문을 더 읽고, 실험을 더 설계하고,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코딩 기초 부재로 낭비한 에너지가 연구의 질에 직결된다는 걸, 이제는 분명히 안다.
지금 학부생이라면, 제발 코딩 수업을 진지하게 들어라
이 글을 읽는 화학공학, 재료공학, 생명공학, 기계공학 학부생이 있다면 이것 하나만 기억해줬으면 한다. 코딩 수업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도, 컴퓨터공학과 흉내내기도 아니다. 그건 앞으로 네가 연구자로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언어를 배우는 시간이다.
특히 다음 상황에서 코딩 역량이 없으면 직접적인 불이익이 생긴다:
- 실험 데이터를 직접 시각화하고 분석해야 할 때
- 시뮬레이션 코드를 수정하거나 직접 작성해야 할 때
- 공동연구자의 코드를 읽고 리뷰해야 할 때
- AI 기반 툴을 연구에 도입하려 할 때
- GitHub에 코드 저장소를 공개해야 할 때 (점점 필수화되는 추세)
이 중 하나라도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지금 당장 코딩을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
늦었다고 느껴도 괜찮다, 하지만 빠를수록 좋다
나는 대학원에서 코딩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쉽지 않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더라도, 목적 있는 학습은 생각보다 빨리 성과를 낸다. “내 실험 데이터를 Python으로 분석해보겠다”는 목표 하나만 있어도 배우는 속도가 다르다.
중요한 건 언제 시작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목적 의식을 갖고 배우느냐다. 학부 수업 때 그 목적 의식만 있었다면, 내 대학원 생활의 첫 1년은 훨씬 달랐을 것이다.
지금 학부생이라면, 코딩 수업에서 졸지 마라. 그 수업이 나중에 당신의 연구 속도를 결정한다. 대학원생이라면, 지금 당장 Python 한 줄부터 시작해라. 포닥이 되어 돌아보면, 그 첫 줄이 가장 중요한 투자였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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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경험: 이 글은 화학공학과 코딩 수업 관련 주제를 대학원 생활 중 직접 경험하면서 얻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