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설계한 촉매가 예상대로 반응했던 날

연구실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대부분의 날은 그냥 비슷비슷하게 흘러간다. 실험을 설계하고, 돌리고, 결과를 분석하고, 다시 설계한다.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 날이 훨씬 많다. 그렇게 쌓인 실패들 사이에서, 가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나에게 그 순간은 내가 처음으로 직접 설계한 촉매가 예상한 방향대로 반응했을 때였다.

촉매를 설계하는 연구자

선행 논문들 사이에서 빈틈을 찾다

촉매 연구를 하다 보면 선행 논문을 정말 많이 읽게 된다. 어떤 원소 조합이 어떤 반응에 활성을 보이는지, 구조적으로 어떤 특징이 선택성을 높이는지 — 이런 것들이 논문마다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처음엔 그 조각들을 읽어도 큰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데이터를 외우는 것 같았다.

어느 시점부터 그 조각들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논문에서 봤던 구조와 다른 논문에서 봤던 활성 패턴을 조합하면 어떨까. 아직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조합이 보였다. 특정 반응을 타겟으로 설계한 촉매였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였다. 실제로 될지는 해봐야 알았다.

실험을 세팅하면서도 반신반의였다. 잘 안 되면 다시 설계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제발 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연구자라면 누구나 그 묘한 긴장감을 알 것이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이 짧지 않다. 합성에서 분석까지,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그 기다림 동안 머릿속으로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예상대로 반응이 나왔을 때

긍정적인 실험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

반응 후 분석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이 기억난다. 예상했던 방향으로 반응이 진행되고 있었다. 선택성도 생각보다 좋았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데이터를 다시 확인했다. 맞았다.

짜릿했다. 이 단어 말고는 딱히 표현이 없다. 내가 설계한 것이 현실에서 작동했다는 사실이 주는 감각이 있다. 논문에서 읽었던 개념들이 실제 반응 결과로 눈앞에 나타나는 그 순간. 이게 연구구나 싶었다. 이 감각을 한 번 느끼고 나면 연구를 계속하게 되는 이유가 생긴다.

동시에 이 결과가 논문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처음으로 내 데이터로 논문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대감이 이후 몇 달 동안 연구를 계속하게 만든 동력이 됐다. 연구를 하다 보면 슬럼프가 오기 마련인데, 그 순간의 기억이 버팀목이 됐다.

촉매 연구가 주는 자유

촉매 연구의 매력 중 하나는, 내가 설계한 물질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합성 조건을 바꾸면 구조가 달라지고, 구조가 달라지면 반응 결과가 달라진다. 그 변수들을 하나씩 조정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촉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퍼즐을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퍼즐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오면, 연구가 왜 재미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처음에 나는 생명공학을 하고 싶었다. 촉매 연구를 배정받고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설계한 촉매가 예상대로 반응했던 그 날, 그 실망이 다른 감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연구가 내 것이 될 수 있겠다는 감각. 그게 생겼다. 연구는 자유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느꼈다.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내 손으로 만들고, 내 눈으로 결과를 확인한다. 그 과정 전체가 내 것이다.

연구자가 된다는 것

논문을 쓰는 박사과정 연구자

연구는 결국 자기 손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주어진 주제 안에서도, 자신만의 설계와 시도가 쌓이면 그게 자신의 연구가 된다. 그 순간이 언제 오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온다.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 다른 연구를 하게 되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질문을 찾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자신의 연구가 된다. 내가 처음 설계한 촉매가 반응했던 그 날처럼, 그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박사과정은 길다. 실패가 성공보다 훨씬 많다. 그 긴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건, 화려한 연구 성과보다는 이런 작은 순간들이다. 내 손으로 설계한 것이 작동하는 순간, 내 아이디어가 데이터로 확인되는 순간. 그 순간들이 쌓여서 결국 학위가 된다.

지금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지쳐있는 대학원생이라면, 조금만 더 버텨보길 권한다. 그 짜릿함은 분명히 온다.


이 글은 화학공학 박사 Peter Kim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Peter Kim의 다른 경험담

댓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Akismet을 사용하여 스팸을 줄입니다. 댓글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