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실험을 하다 보면 수많은 종류의 시약을 다루게 됩니다. 어떤 시약은 공기 중에서 꺼내 그냥 비커에 덜어도 아무 문제없지만, 어떤 시약은 공기에 닿는 순간 연기를 피우거나, 심하면 불이 붙거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저는 박사과정 시절부터 포닥 생활까지 여러 해 동안 이런 시약들을 다루어 왔는데,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부하는 실험실 사고 사례집을 볼 때마다 ‘아, 저건 나도 실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공기 중 산소나 수분에 반응하는 시약을 다루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정리해 보려 합니다.

공기에 반응하는 시약이란?
시약을 크게 나누면 공기 중에서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과 산소(O₂) 혹은 수분(H₂O)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후자를 보통 공기민감성 시약(air-sensitive reagent) 또는 수분민감성 시약(moisture-sensitive reagent)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면:
- 유기리튬 시약 (n-BuLi, sec-BuLi 등): 공기 중 산소·수분과 즉시 반응해 발화 가능
- 그리냐르 시약 (RMgX): 수분에 분해, 반응성 급격히 저하
- 수소화물 환원제 (LiAlH₄, NaH 등): 물과 반응 시 수소 기체 발생, 발화 위험
- 전이금속 촉매 일부: 공기 산화로 활성 소실
- 무수 용매 시약계: 수분 혼입 시 반응 수율·선택성 저하
이 중 제가 가장 긴장하며 다뤘던 건 단연 n-BuLi(n-부틸리튬)입니다. 헥산 용액에 녹아 있는 형태로 공급되는데, 소량만 공기 중에 노출되어도 흰 연기를 내뿜고 불꽃이 튀기도 합니다. 처음 다룰 때는 손이 떨렸던 기억이 납니다.
사고 사례에서 배운 것들
박사과정 때 학교 안전 교육에서 받은 사고 사례 자료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여럿 있었습니다. 실제로 어느 연구실에서는 LiAlH₄를 덜어내다 소량이 실험대에 흘렸는데, 바닥의 물기와 반응해 순식간에 불이 붙어 실험복에 옮겨붙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슐렌크 라인 조작 미숙으로 공기가 역류해 들어가면서 시약이 급격히 반응, 유리 기구가 파손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고들의 공통점은 ‘시약의 특성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채 실험을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사례집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실험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
1. SDS(물질안전보건자료) 먼저 읽기
모든 시약에는 SDS(Safety Data Sheet)가 있습니다. 실험 전 반드시 SDS의 Section 5(화재·폭발), Section 7(취급·저장), Section 8(노출·보호)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특히 ‘반응성(Reactivity)’ 항목에서 공기·물과의 반응 여부를 체크해야 합니다.
2. 불활성 기체 환경 구축
공기민감성 시약을 다룰 때는 질소(N₂) 또는 아르곤(Ar)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주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 슐렌크 라인(Schlenk Line): 진공·불활성 기체를 전환하며 반응 용기를 조작. 숙련도가 필요하지만 일반 실험실에서 가장 많이 씁니다.
- 글러브박스(Glove Box): 완전히 불활성 분위기 내에서 조작. 수분·산소 농도를 수 ppm 이하로 유지할 수 있어 초민감 시약에 적합합니다.
저는 포닥 초기에 글러브박스 사용법을 제대로 배우는 데만 일주일을 투자했습니다. 그만큼 장비 사용법 숙지가 중요합니다.

3. 유리 기구 건조 및 불활성화
수분민감성 시약을 쓸 때는 사용할 유리 기구를 오븐(약 120°C)에서 충분히 건조한 뒤, 냉각 중에도 N₂/Ar 퍼지(purge)를 유지해야 합니다. 흡습된 유리 기구를 그냥 쓰다가 반응 결과가 엉망이 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4. 시린지 및 캐뉼라 조작 훈련
액체 공기민감성 시약은 시린지(syringe)나 캐뉼라(cannula)로 옮깁니다. 시린지 조작 시 공기를 빨아들이지 않도록, 주입 전 N₂로 퍼지하고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빠른 동작은 공기 역류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5. 폐기물 처리도 위험하다
사용 후 남은 시약, 오염된 시린지, 반응 잔류물도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LiAlH₄나 NaH 잔류물은 물에 버리면 절대 안 되고, 전용 폐기 절차(소량 에탄올로 quenching 후 폐기통)를 따라야 합니다. 폐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사고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결국은 ‘알고 시작하는 것’이 전부
저는 지금도 처음 다루는 시약이 생기면 반드시 SDS를 먼저 열어봅니다. 포닥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이 쌓이면 ‘대충 알겠지’ 하는 안일함이 생기기 쉬운데, 그 안일함이 사고의 씨앗이 됩니다. 대학원생 시절 사례집에서 읽었던 사고들 중 상당수가 ‘경험 있는 연구자’에게서 발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실험실은 지식이 많을수록 더 안전한 곳입니다. 시약 하나를 집어들기 전에 그 시약이 공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보호 장비가 필요한지,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진짜 실험 실력입니다. 그 습관이 여러분과 동료를 지켜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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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경험: 이 글은 대학원 생활 중 직접 경험하면서 얻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