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갑작스러운 여가시간, 그냥 연구실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박사과정 내내 나를 지배했던 감각 중 하나는 “지금 쉬어도 되는 건가?”라는 불안이었습니다. 실험이 잘 안 풀리는 시기에는 당연히 연구실에 있어야 할 것 같고, 실험이 잘 되는 시기에는 이 기회에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쉬는 건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상 여가시간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노트북을 열고 데이터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할 일이 있을 것 같고, 이 시간을 그냥 보내면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진짜 여가가 아니었습니다. 몸만 연구실 밖에 있을 뿐, 머릿속은 여전히 실험실에 있었습니다.

여가시간이 ‘갑자기’ 생긴다는 것의 의미

대학원 생활에서 여가시간은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미리 계획된 휴가처럼 “이번 주말은 쉬어야지”라고 준비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지도교수님이 갑자기 출장을 가신다거나, 실험 샘플이 준비되려면 이틀이 더 필요하다거나, 예상보다 분석이 일찍 끝났다거나. 이런 식으로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시간이 뚝 떨어집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학원생은 이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친구를 만나려고 해도 “나 지금 시간 있어”라고 말하는 게 어색하고, 미리 약속을 잡지 않았으니 친구들도 각자 일정이 있습니다. 혼자 뭘 해볼까 싶어도 딱히 준비해 둔 게 없고, 결국 “그냥 연구실 가서 뭐라도 하자”는 결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저도 박사과정 동안 이런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나를 얼마나 갉아먹는 방식인지를 깨달은 건, 박사 4년차 어느 가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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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걸 알아챘을 때

박사 4년차 가을, 지도교수님이 해외 학회에 2주 가셨습니다. 실험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잠깐 숨 돌릴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2주를 고스란히 연구실에서 보냈습니다. 딱히 급한 것도 없었는데, 그냥 거기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같이 박사과정을 하던 친구가 한 마디 했습니다. “너 요즘 얼굴이 항상 똑같다. 표정이 없어.” 처음엔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오래 전부터 웃을 일을 스스로 없애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던 등산도 안 하고,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들도 1년 넘게 못 봤고, 영화 한 편 느긋하게 보는 것조차 “이 시간에 논문 읽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방해받고 있었습니다.

멘탈이 무너지는 건 갑자기 오지 않습니다. 자잘한 즐거움을 하나씩 포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삶에서 활력이 완전히 빠져나가 있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앞으로는 여가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을 제대로 쓰겠다고. 준비가 안 됐어도, 갑작스러워도, 연구실로 도망가지 않겠다고.

갑작스러운 여가시간, 이렇게 활용했습니다

1. 친구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대학원생끼리는 서로 바쁘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오히려 “갑자기 연락하면 부담 주는 건 아닐까”라고 머뭇거립니다. 하지만 직접 해보니 달랐습니다. “나 오늘 갑자기 시간 생겼는데, 저녁 가능해?”라고 문자를 보내면, 생각보다 자주 “나도 마침!”이라는 답이 왔습니다.

대학원 친구들도 여가시간을 갑자기 맞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시간대가 맞아떨어지면, 오히려 예약 없이 만나는 즉흥적인 약속이 더 편하고 솔직한 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박사과정 이후로 저는 “갑자기 생긴 시간 = 연락할 타이밍”이라는 공식을 머릿속에 심었습니다. 먼저 연락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지자, 자연스럽게 사람 관계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2.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는 나만의 ‘여가 메뉴’를 미리 만들어두기

준비가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건 핑계입니다. 미리 준비할 필요가 없는 것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는 연구실 노트 한켠에 “시간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것들” 목록을 짧게 적어두었습니다.

동네 카페에서 좋아하는 커피 한 잔 마시며 소설 읽기, 오래 못 간 헬스장 가기, 유튜브에 쌓아둔 기타 강의 한 편 보기,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전시회 찾아보기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대단한 계획이 아니어도 됩니다. 중요한 건 그 목록이 있다는 것 자체입니다. 시간이 생겼을 때 “뭐 하지?”라는 공백 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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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죄책감 없이 쉬는 연습’을 의도적으로 할 것

이게 가장 어렵습니다. 몸은 쉬는데 머릿속으로는 계속 “이래도 되나?”를 반복하면 그건 휴식이 아닙니다. 저는 이 습관을 고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작은 연습을 했습니다.

여가시간이 생기면 노트북을 아예 가방에 넣어두고, 연구 관련 앱 알림도 잠시 꺼두었습니다. 처음에는 불안했습니다. 혹시 급한 연락이 오면 어쩌지? 그런데 실제로 그 시간 동안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완전히 쉬고 돌아온 날 오후에 훨씬 집중이 잘 됐습니다.

연구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닙니다. 5년, 10년을 이어가야 하는 마라톤입니다. 중간에 제대로 숨을 고르지 않으면 결국 주저앉게 됩니다.

여가시간을 잘 쓰는 것이 연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포닥을 하면서 명확하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번아웃이 왔을 때 회복하는 속도는, 평소에 멘탈을 얼마나 잘 관리해왔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릅니다. 박사과정 때 자신을 몰아붙이기만 했던 시기와, 여가를 적극적으로 챙겼던 시기를 비교해보면 아이디어의 질부터 달랐습니다.

연구에서 창의적인 통찰은 책상 앞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산책을 하다가, 친구와 엉뚱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혀 관련 없는 책을 읽다가 불쑥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뇌에게 ‘연구 외의 시간’을 주는 것 자체가 연구를 위한 투자입니다.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분들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갑자기 시간이 생겼을 때, 그 시간을 연구실로 돌려보내는 건 미덕이 아닙니다. 그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신호라고 생각하세요.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친구에게 문자 한 통 보내세요.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가보세요. 아무 생각 없이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세요.

여가시간을 잘 쓰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연구자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략입니다. 대학원 생활은 길고, 멘탈은 한 번 무너지면 회복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 당장, 다음에 갑자기 시간이 생기면 뭘 할지 작은 목록 하나만 만들어보세요. 그것만으로도 달라집니다.


※ 이 글은 실제 박사과정 및 포닥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경험담입니다.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 저자의 경험: 이 글은 대학원 생활 중 직접 경험하면서 얻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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