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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3년차, 나는 몇 달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화학공학 박사 과정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주저 없이 3년차를 꼽겠습니다. 연구실에 출근은 했습니다. 자리에도 앉았습니다. 컴퓨터도 켰습니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우스를 잡으면 유튜브가 켜지고,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갔고, 그게 몇 달이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 시기가 바로 대학원생 번아웃의 정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쌓이다 못해 무너졌던 시간들
번아웃이 한 번에 온 건 아니었습니다. 박사 2년차까지는 그냥 버텼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제 실험 방향이 계속 안 잡혔거든요. 연구하면서 방법론을 바꿔보고, 여러 조건을 시도해봤으며, 다른 논문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접근을 해봤는데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화학공학 연구에서는 논문을 내려면 반드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제게는 그것이 부족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과제는 과제대로 마감이 있었고, 행정 서류 처리와 학과 행사 같은 것들이 중간중간 끼어들었습니다. 야근이 일상이 되었고, 밤샘도 꽤 자주 했습니다. 실제로 해보니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실험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게 될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러다 보니 실험 자체가 귀찮아졌습니다. 결국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번아웃인지도 몰랐습니다. 단순히 좀 지쳐 있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전형적인 번아웃의 초기 증상인데도 말이죠. 당시에는 그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동료 얘기 듣다가 퍼뜩 깨달은 것
깨달음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연구실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요즘 실험 어떻게 되냐”고 물었고, 저는 그냥 대충 얼버무렸습니다. 그 순간 문득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 나 요즘 실험을 한 게 없는데?”
그 자리에서 돌아보니 정말 몇 달째 제대로 된 실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논문을 읽는 척은 했지만 집중해서 읽은 적이 없었고, 데이터 정리는 손도 대지 않았으며, 실험 계획을 세운 것도 없었습니다. 연구실에 왔다 갔다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였습니다. 그 순간 그 현실이 갑자기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무섭기도 했습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현실을 직면하고 나니 더 무거웠습니다. 동료들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부터 꽤 복잡한 감정을 느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버텨온 것의 무게가 한 순간에 내려앉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그 깨달음 이후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연구실에 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객관적으로 적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번아웃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화학공학 연구에서는 특히 작은 진전도 중요합니다. 저는 실험실에 나와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큰 목표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일 30분이라도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 논문을 한 페이지라도 제대로 읽는 것, 실험 계획서를 한 줄이라도 쓰는 것 같은 작은 목표를 세웠습니다.
지도교수님께도 솔직하게 현재 상황을 알렸습니다. 처음에는 용기가 필요했지만, 실제로 해보니 교수님도 이해해주셨고 오히려 더 나은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연구 방향을 다시 조정하는 것을 도와주셨고, 불필요한 행정 업무를 일부 줄여주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번아웃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스템과 개인의 상황이 맞지 않을 때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받았을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정하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박사 과정은 마라톤입니다. 단거리 달리기처럼 무작정 앞으로만 나갈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멈춰서 숨을 고르고, 방향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저는 그 3년차의 고비를 통해 그것을 배웠습니다.
이 글은 화학공학 박사 Peter Kim의 실제 경험과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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