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닥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요즘도 가끔 주말 오전에 연구실 건물 앞을 지나칠 때면, 불 켜진 창문을 올려다보며 박사과정 시절이 떠오릅니다. 저 안에 누군가 있겠구나, 혼자서 묵묵히 코드를 돌리거나 논문을 읽고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때의 저처럼요. 당시에는 주말에 연구실에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심지어 그게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 제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는지 새삼 느낍니다. 지금 이 글은 제가 옳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틀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말 없이 일하면 정말 앞서나갈까
박사과정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저는 본격적으로 주말을 반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같은 연구실 동료들과 암묵적인 경쟁이 있었습니다. 누가 더 일찍 나오고, 누가 더 늦게까지 남아있느냐가 일종의 성실함의 척도처럼 여겨지던 분위기였죠. 저는 토요일 오전 9시에 연구실에 도착해서 밤 10시에 퇴근하는 루틴을 만들었고, 일요일도 오후만큼은 꼭 나와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단기적으로는 확실히 성과가 있었습니다. 주말까지 투자한 덕분에 박사 3년 차에는 SCI급 논문을 두 편 제출할 수 있었고, 지도교수님께 꽤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학회 발표 기회도 늘었고, 장학금 선정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주말 없이 일하면 정말로 앞서나간다는 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닙니다. 실적이라는 숫자는 분명히 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주말을 쉬지 않는다는 것은 회복할 시간을 스스로 삭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평일에 쌓인 피로가 주말에도 해소되지 않으니, 다음 주 월요일이 되면 이미 절반은 지친 상태로 출발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이걸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피로가 누적되는 속도보다 성과가 쌓이는 속도가 더 눈에 잘 보였으니까요.

번아웃, 내가 직접 겪어보니
박사 4년 차 초입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연구실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는 순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감각이 밀려왔습니다. 그냥 멍하게 모니터만 바라봤습니다. 30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는 그냥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넘어갔습니다.
번아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쌓여서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는 방식으로 옵니다. 당시에는 제가 번아웃 상태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냥 의욕이 없는 게 게으름 때문이라고 자책했고, 더 무리하게 책상에 앉아 있으려 했습니다. 앉아 있다고 연구가 되는 건 아닌데, 앉아 있는 시간이라도 늘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 시기에 논문 작업 속도는 오히려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예전에 하루 만에 끝냈던 분석 작업을 사흘이 걸려도 마무리하지 못했고, 지도교수님과의 미팅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주말을 반납한 대가로 얻은 단기 실적이, 번아웃으로 인한 장기 손실로 상쇄되고도 남았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건강이 무너지면 연구도 무너진다
번아웃과 함께 찾아온 건 신체적인 문제들이었습니다. 박사 4년 차 중반, 정기 건강검진에서 처음으로 이상 소견을 받았습니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서 만성 피로가 쌓였고, 불규칙한 식사와 운동 부족이 겹쳐서 소화기 관련 증상이 생겼습니다. 연구실 동료 중에는 허리 디스크로 몇 주간 병가를 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우리가 신체를 얼마나 혹독하게 다루고 있었는지 직감했습니다.
몸이 아프면 연구를 못합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박사과정 중에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연구는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여겼지만, 머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몸이 받쳐줘야 한다는 걸 몸소 배웠습니다. 당시에는 수면 시간을 6시간 이하로 줄이면서도 집중력은 유지될 거라 믿었는데, 실제로는 인지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고 있었습니다. 논문 리뷰를 읽어도 내용이 머릿속에 남지 않고, 같은 문단을 세 번 읽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연구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닙니다. 박사과정은 최소 4년에서 6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지속해야 하는 장기전입니다. 초반 1~2년의 스퍼트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버리면 정작 중요한 시기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논문 실적 그래프는 3년 차까지 가파르게 올랐다가 4년 차에 급격히 꺾였고, 졸업까지 예상보다 1년이 더 걸렸습니다.
지속가능한 대학원 생활을 위한 균형
포닥이 된 이후 저는 의도적으로 주말 오전만큼은 연구를 하지 않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불안했습니다. 쉬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경쟁자가 나를 앞지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요. 그런데 몇 달을 지속해보니 오히려 월요일에 연구실에 나오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졌고,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른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박사과정 시절을 돌아보면, 제가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냈던 순간들은 책상 앞이 아니었습니다. 산책을 하다가, 샤워를 하다가, 혹은 친구와 밥을 먹다가 갑자기 실마리가 떠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뇌가 쉬는 것처럼 보일 때 오히려 백그라운드에서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경험을 그냥 우연이라고 넘겼는데, 지금은 의도적으로 그런 여백을 만들려고 합니다.
- 주말 중 하루는 완전한 비연구 시간으로 설정하기
- 수면 시간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 고정값으로 두기
- 운동을 생산성 도구로 인식하고 루틴에 포함하기
- 번아웃 징후(무기력, 집중력 저하, 흥미 상실)를 조기에 알아채기
- 실적이 줄더라도 지속 가능한 페이스를 우선시하기
이 중 어느 하나도 박사과정 때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분들이 저보다 더 빨리 이걸 깨달았으면 합니다.
쉬는 것도 전략이다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제 박사과정 전체를 조금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주말을 반납했던 시절의 저는 분명히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일정 부분 실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방식이 유일한 정답도 아니었고, 모든 사람에게 권할 수 있는 방식도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쉰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닙니다. 쉬는 시간은 다음 집중을 위한 준비 시간이고, 장기전을 완주하기 위한 필수 연료입니다. 주말을 완전히 반납하는 것이 최선처럼 보이던 그 시절, 사실 저는 미래의 제 생산성을 빌려 쓰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결국 그 빚은 번아웃과 건강 악화라는 형태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연구실에서 주말마다 불을 켜놓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닿았으면 합니다. 당신이 열심히 한다는 건 압니다. 그런데 오늘 하루쯤은, 진짜로 쉬어도 됩니다. 그게 결코 뒤처지는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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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경험: 이 글은 관련 주제를 대학원 생활 중 직접 경험하면서 얻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