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을 만나는 상황은 피할 수 없다
이공계 연구를 하다 보면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연구실에 외국인 방문 연구자가 오는 경우도 있고, 학술대회에서 발표 후 외국인 연구자가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 포스터 발표를 하면 앞에 서서 영어로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런 상황들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연구자로서 활동하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상황들이다. 그렇다면 두려워하는 것보다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낫다.
처음엔 왜 이렇게 부담스러울까?
한국에서 영어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영어 회화를 부담스러워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학교에서 배운 영어는 주로 읽고 쓰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고, 말하는 연습은 충분하지 않았다. 게다가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이 더해지면서 입이 더 무거워진다.
특히 “문법이 틀리면 어떡하지?”, “발음이 이상하면 어떡하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 걱정들의 공통점은 실제 경험이 아니라 상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막상 외국인과 대화해보면 이 걱정의 대부분이 기우였음을 알게 된다.
실제로 들어보면 다르다
외국인 연구자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 익숙하다. 국제 학술 커뮤니티에는 전 세계에서 온 연구자들이 있고, 모두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는 않는다. 독일, 일본, 중국, 프랑스 출신 연구자들도 각자의 억양과 문법 실수를 가지고 영어로 소통한다.
상대방은 문법보다 내용에 집중한다. “이 연구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이 실험 조건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듣고 싶은 것이지, 완벽한 영어 문장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문법이 약간 어색하더라도 내용을 전달하면 충분하다.
실제로 외국인과 처음 대화해봤을 때 놀랐던 것이 있다. 상대방이 내 영어를 생각보다 훨씬 잘 이해한다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으면 전달이 된다.

학술 영어는 일상 영어와 다르다
이공계 연구자들이 영어 회화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상 영어”와 “학술 영어”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일상 영어는 다양한 표현, 관용어, 문화적 맥락이 필요하다. 하지만 학술 영어는 다르다. 전공 용어와 기본적인 문장 구조만 알아도 의사소통이 된다. “This result shows that…”, “We found that…”, “The reason for this is…” 같은 패턴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촉매, 반응기, 열전달, 유체역학 같은 전공 용어들은 이미 영어로 알고 있다. 이 단어들만 조합해도 대화의 절반은 이미 성공이다. 나머지 절반은 기본적인 동사와 연결어로 채우면 된다.
학술 커뮤니케이션에서 필요한 영어는 생각보다 훨씬 좁은 범위다. 일상 영어 전체를 마스터할 필요가 없다.
부담 내려놓는 방법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짧게 말해도 된다. 긴 문장을 만들려고 하면 막힌다. 짧고 간결하게 핵심만 말해도 충분하다. “This works well at high temperature.” 같은 짧은 문장이 길고 복잡한 문장보다 오히려 더 명확하게 전달될 때가 많다.
모르면 되물으면 된다. 질문을 못 알아들었을 때 당황하지 말고 “Could you please repeat that?”이라고 하면 된다. 이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원어민들도 자주 한다.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러워진다. 처음 한 번이 가장 어렵다. 한 번 해보면 두 번째는 훨씬 쉽고, 세 번째는 더 쉬워진다. 완벽함을 목표로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

영어 회화, 이렇게 시작해보자
연구실에 외국인 방문자가 오면 먼저 말을 걸어보자.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What are you working on?” 또는 “Where are you from?” 같은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하면 된다.
학회에서 발표를 들었다면 발표 후에 다가가서 “I really enjoyed your talk”라고 한마디 하는 것도 좋은 출발점이다. 그 한마디에서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공계에서 영어는 완벽하게 구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연구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수단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목적을 달성하면 충분하다. 부담을 내려놓고 일단 말을 꺼내보자. 생각보다 훨씬 잘 통한다.
비원어민끼리의 영어 소통
한 가지 더 알아두면 좋은 사실이 있다. 국제 학술 커뮤니티에서는 비원어민끼리 영어로 소통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영어로 대화하고, 독일인과 중국인이 영어로 토론하는 장면이 학회에서는 자연스럽다.
이런 상황에서는 완벽한 영어 발음이나 문법보다 서로 이해하려는 의지와 핵심 내용 전달이 훨씬 중요하다. 상대방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서로 더 천천히, 더 명확하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환경에서 오히려 영어 소통이 더 쉽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영어가 모국어인 연구자보다 비원어민 연구자와 대화할 때 더 편하다는 이야기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흔히 나온다. 처음 영어 소통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은 바로 이런 비원어민이 많은 국제 학회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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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경험: 이 글은 국내외 연구 활동과 학술대회에서 외국인 연구자들과 직접 소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