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만 하고 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내가 박사까지 한 이유

안녕하십니까. 화학공학과 박사를 따고 포닥으로 연구중인 연구자입니다. 예전에 박사과정하던 시절에 학부생 후배들을 만나거나 석사 1년차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석사만 하고 취업할 생각입니다.” 사실 저 역시 대학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는 완전히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석사 2년만 마치면 대기업 R&D 센터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박사과정 4년차가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오늘은 그 과정을 솔직하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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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만 하겠다던 내가 가졌던 착각

대학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저는 명확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석사 2년 동안 논문 2~3편 정도 쓰고, 학위를 받은 뒤 대기업 연구소에 입사하겠다는 그림이었습니다. 주변 선배들도 대부분 그렇게 했고, 제 지도교수님도 석사 출신으로 대기업에 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셨습니다. 박사는 교수가 되고 싶거나 정말 연구에 미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석사 과정을 보내면서 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실험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생각보다 괴롭지 않았습니다. 물론 실험이 실패하면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동시에 ‘왜 안 됐을까?’라는 궁금증이 먼저 생겼습니다. 논문을 읽다가 문득 ‘이 방법을 우리 시스템에 적용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저는 제가 연구에 어느 정도 적성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박사 진학을 진지하게 고려하지는 않았습니다. 석사만 해도 충분히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 연구실 선배들 중에도 석사 졸업 후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에 입사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석사 졸업 후 진로, 현실을 마주하다

석사 2년차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실을 조금씩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대기업 R&D 센터에 들어가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제 주변 동기들을 보면 대략 30% 정도만 원하던 대기업 연구직에 입사했습니다. 나머지는 중견 화학회사, 공기업, 또는 생산관리 쪽으로 진로를 틀었습니다.

더 중요한 건 대기업에 들어간다 해도 석사 출신이 할 수 있는 역할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석사 출신은 대부분 주어진 프로젝트의 실무자로 일하게 됩니다. 물론 경력이 쌓이면 책임연구원이 될 수는 있지만, 연구 과제를 직접 기획하고 팀을 이끄는 연구책임자(PI) 포지션에 오르기는 매우 어렵다고 했습니다. 연구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해진 방향에서 실험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습니다.

또 하나 깨달은 점은 한 번 취업하면 다시 박사과정으로 돌아오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 월급이 나오고, 생활 패턴이 자리 잡히고, 나이도 들어갑니다. 그 상태에서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4~5년을 더 공부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큰 결단을 요구합니다. 실제로 회사 다니다가 박사를 하러 돌아온 선배를 한 분 봤는데, 본인도 정말 힘들어했고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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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적성,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박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저는 석사 1~2년차 동안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관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 적성이라는 건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순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실험이 실패했을 때 자신의 반응입니다. 실험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나왔을 때 좌절감과 짜증만 느껴진다면 연구자로서의 적성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실패한 결과를 보면서 ‘왜 이렇게 나왔을까?’, ‘변수를 바꿔보면 어떻게 될까?’라는 호기심이 먼저 생긴다면 좋은 신호입니다. 저는 실험이 실패했을 때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다음 실험 조건을 궁리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두 번째는 논문을 읽을 때의 태도입니다. 논문 읽기를 순전히 과제나 의무로만 느낀다면 연구가 즐겁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논문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이 방법론을 우리 연구에 적용하면?’, ‘이 결과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연구자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긴 시간 동안 한 문제에 몰두할 수 있는 인내심입니다. 박사과정은 짧게는 4년, 길게는 6~7년이 걸립니다. 그 시간 동안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석사 과정에서 한 주제를 6개월 이상 붙잡고 있을 때 지루함보다 깊이감을 느낀다면, 박사과정도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박사까지 하면 정말 달라지는 것들

석사 2년차 말, 저는 결국 박사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4년차가 되어 돌아보니 그 결정이 제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명확하게 보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선택할 수 있는 진로의 폭입니다. 석사 출신은 주로 기업 연구소나 생산 관리 쪽으로 진로가 제한되지만, 박사는 훨씬 다양한 길이 열립니다. 대학교수,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 글로벌 기업의 시니어 연구원, 스타트업 CTO까지 선택지가 넓어집니다. 물론 모든 길이 쉬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도전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연구에서의 역할입니다.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면 회사에서도 연구 과제를 직접 기획하고 팀을 이끄는 연구책임자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주어진 실험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방향을 결정하고 전략을 세우는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이는 연구자로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직결됩니다.

세 번째는 전문성에 대한 인정입니다. 박사과정에서 4~5년 동안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면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게 됩니다. 학회에서 발표할 때, 논문을 쓸 때, 기업과 협업할 때 이 전문성은 큰 자산이 됩니다. 석사 과정에서는 넓게 배우지만 얕게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박사과정에서는 좁지만 깊게 파고들 수 있습니다.

박사 진학, 언제 결정하는 것이 좋은가

많은 학생들이 “나중에 필요하면 박사를 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회사에 취업하면 경제적 안정이 생기고, 생활 패턴이 자리 잡히고, 결혼이나 육아 같은 생애 주기가 진행됩니다. 그 상황에서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월 100만 원 남짓한 장학금으로 생활하면서 연구에 몰두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석사 과정 중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석사 1년차 때는 아직 연구 경험이 충분하지 않으니 판단하기 어렵지만, 석사 2년차가 되면 자신의 연구 적성과 흥미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때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 선배들과 교수님께 조언을 구하면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박사 진학이 무조건 옳은 선택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연구에 적성이 맞지 않는데 억지로 박사를 하면 본인도 힘들고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석사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저는 석사 2년차 말, 제가 연구에 적성이 있고 더 깊이 배우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박사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지금 4년차가 되어 돌아보니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물론 박사과정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실험이 안 풀릴 때, 논문이 리젝당할 때, 동기들이 회사에서 받는 월급을 들을 때는 흔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고, 제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은 분명 값진 경험입니다.

여러분도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냉정하게 관찰해보시기 바랍니다. 연구가 정말 즐거운지, 긴 시간 동안 한 문제에 몰두할 수 있는지, 실패 앞에서도 호기심을 잃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 답이 “그렇다”라면 박사 진학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합니다. 반대로 연구보다는 다른 일이 더 맞는다고 느낀다면 석사 후 취업도 훌륭한 선택입니다. 중요한 건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목표에 맞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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